▲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시민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3년 달라질 노동환경을 진단ㆍ분석하고 그에 따른 노무ㆍ노사관계 전망을 내다보는 세미나가 개최됐다. 중앙경제HR교육원은 지난 1월 18일 서울 중구 백석빌딩신관 3층에서 '2023 달라질 노동환경, 노무ㆍ노사관계 전망' 세미나를 개최했다.

중앙경제HR교육원이 신년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이번 세미나에는 노사관계ㆍ노동분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올해부터 달라질 노동환경에서 기업이 대응해야 할 방안을 제안하고, 노무ㆍ노사관계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

이날 세미나는 ▲2022년 주요 노동사건 판례 분석 및 대책(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정부의 2023년 노사관계 정책 방향(권창준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민주노총의 2023년 운동 방향과 주요 과제(이정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실장) ▲한국노총의 2023년 운동 방향과 주요 과제(정문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1본부장) ▲경총의 2023년 노사관계 전망과 대책(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협력본부장) ▲2023년 노사관계 이슈와 전망(최영우 중앙경제HR교육원 원장) 순으로 진행됐다.
 
2022년 기억해야 할 판례 19선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2022년 선고된 총 19개의 주요 노동사건 판례를 소개했다. 첫 번째로 소개한 노동사건 판례는 회사에 불만을 품고 퇴사 전 업무 자료를 인수인계하지 않고 삭제한 것이 업무방해죄라고 인정받은 대법원 판결이다.

지난해 1월 14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A 씨 등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와 함께 기소된 B 씨 등도 징역 6~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회사의 임원으로 일했던 A 씨 등은 지분권을 요구했으나 대표이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불만을 품고 개발 업무ㆍ거래처ㆍ자재 구매 등의 자료를 퇴사 전 3개월간 회사 공용 폴더에 백업하지 않다가 퇴사 직전 노트북 컴퓨터 드라이브를 포맷한 뒤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다. A 씨 등은 퇴사 후 같은 유형의 영업을 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에 검찰은 A 씨 등을 업무방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대법원은 "A 씨 등의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피해 회사의 경영업무가 방해됐거나 방해될 위험이 발생했다고 판단된다"며 "A 씨 등에게는 적어도 미필적으로는 업무방해의 범의도 있었다"고 봤다. 그러면서 "A 씨 등이 퇴사 직전에 회사 공용 폴더로 백업을 하지 않은 자료를 인수인계 없이 삭제한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광선 변호사는 "기업에서는 일반적으로 퇴사자에 대해 인수인계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나, 근로자들은 퇴사 시 인수인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해당 사안의 근로자들은 인수인계를 소홀히 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자료를 삭제ㆍ포맷한 후 아무런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 채 퇴사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인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판결의 의의에 대해서 "회사로서는 인수인계 의무를 명시하고 이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안에 따라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광선 변호사는 이외에도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를 부담하는 경우 기간제로 채용하면 위법 △퇴직금 계산 시 수습기간도 포함 △근무형태 개편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례 △재직자 조건이 있더라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한된다는 사례 △카마스터와 자동차회사 사이의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한 사례 △파견과 전출 사이의 판단기준을 제시한 사례 △상여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만 지급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 △1년 기간제 근로자의 연차휴가일수 △3개월간 대기발령 상태였던 저성과자를 자동해고 조항에 따라 해고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례 △정규직 전환정책에 따라 자회사 정직원들의 불법파견 소송 △산업안전보건공단 불법파견 부정 △특별퇴직 후 재채용 약속은 취업규직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해당 △무효인 취업규칙 변경의 적용시점 △재직자 조건이 부가돼 있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 인정취지의 심불기각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무효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판결△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유효 등의 판례를 소개했다.
 
강대강 노정…노사도 녹록지 않아
 
이번 세미나에서 눈에 띄는 건 노사관계의 당사자인 노동계와 경영계가 직접 2023년 전망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노동계에선 한국노총을 대표해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1본부장이, 민주노총을 대표해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이 발제에 나섰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비판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직무ㆍ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노동개혁은 올해 원년을 맞이할 예정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의 예고대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현 '주' 단위에서 월ㆍ분기ㆍ반기ㆍ연 단위로 개편할 경우 장시간 노동시간이 불가피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직무ㆍ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의 경우 공정성을 내세워 저임금 하향평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문주 본부장은 "생애임금과 생애노동생산성을 비교하면 (직무성과급을 도입했을 때) 손해보는 쪽은 노동자"라고 입을 열었다. 이이서 "20대 후반 직장에 입사해서 40대 말까지는 저임금 고생산성을 보이다가 49세를 기점으로 비로소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데, 이를 생애 측면에서 비교하면 생산성보다도 낮거나 비슷한 임금 수준"이라며 "하지만 일상화된 조기퇴직 관행 등 구조조정으로 인해 49.3세가 되면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는 1년 미만 노동자와 30년 이상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2.87배로 연공성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지만, 3배 가까운 연공성이 나타나는 곳은 민간대기업이 아니라 공무원"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가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을 겨냥해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 구축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 운영 등의 정책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양대 노총은 "노동조합을 반사회적 집단으로 폄하해 고립시키려는 악의적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정희 정책실장은 "회계 투명성을 빌미로 한 노조 활동 개입이자 노동운동에 대한 공안 탄압"이라며 "정부의 진짜 의도는 노조를 공격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관철하고 지지율을 제고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대 노총은 올해 정부에 맞서는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투쟁에 방점을 찍되 정부와의 협상도 이어갈 예정이다. '투쟁과 협상'을 함께 가져가 정부의 노동개혁, 연금개혁, 공공부문 개혁을 분쇄하겠다는 게 한국노총의 입장이다. 정문주 본부장은 "고물가ㆍ고금리 과도한 부채 양산으로 벌어진 실질임금 폭락, 구조조정ㆍ해고에 맞서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광범위한 민중 연대를 통한 전선운동이 요구된다"며 "한국노총은 총연맹, 산별, 지역을 엮어 긴밀하게 대응하는 투쟁체제로 전환하고 단계적인 투쟁계획 수립과 실행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정부에 맞서 오는 7월 총파업을 선포했다. 3월에 투쟁 선포 대회를 시작으로, 5월 1일 세계노동절 집회, 7월 총파업까지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대응해나간다는 게 민주노총의 올해 핵심 사업계획이다. 주요 요구는 △노동조합법 개정ㆍ노동개악 반대 △최저임금ㆍ임금 인상 △일자리 보장 △사회공공성 강화 등이다.

경영계를 대표해 발제에 나선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협력본부장은 최근 노동현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노사관계의 사법화'를 경계했다. 노사관계 문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노동계가 법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경영계는 최근 법원이 노사관계와 관련된 판결을 내릴 때 현행법과 거리가 먼 판결을 너무도 쉽게 내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판결이 노사관계를 전망할 때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비판도 이어갔다. 경영성과급과 원청의 사용자성과 관련된 판결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중앙경제HR교육원은 오는 4월 7일부터 노사관계ㆍ노무관리 전문가 과정 4기를 개최한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노사관계 전문가 8명이 8주간 2023년 노사관계 쟁점이슈, 임금체계 개편 주요 쟁점, 정부의 노동개혁 노동법 이슈, 노사 협상 전략, 주요 쟁점판례 분석, 현장 노무관리기법, 단체협약 분석과 개선방안 도출 등을 참가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