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며 지난해 국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노조법 2ㆍ3조 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1월ㆍ2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국회 결단만이 남은 상황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던져졌다.

하지만 최근 예상치 못한 기류가 감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대우조선해양, 현대제철,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하청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연이어 내놓고, 씨제이대한통운(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와 교섭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노동조합법 2조 개정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월 12일 CJ대한통운 1심 판결 직후 "하청노동자와 하청노조의 노동조건 개선 등에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원청에 있음이 확인됐다"며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법 2ㆍ3조 개정, 해 넘겨 다시 국회 '밖'으로
 
노조의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 소송을 제한하도록 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계기로 이슈가 됐다. 이슈 당시 하청노조가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선박을 점거하는 등 파업에 돌입한 것과 관련해 대우조선해양이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과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손배가압류를 계기로 만들어진 노란봉투법을 재소환했다.

이를 계기로 급물살을 탄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국회에서 쟁점 법안으로 떠올랐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을 7대 민생입법 과제로 발표해 추진하고 정의당 등 진보정당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 경영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했으며, 대통령실은 법 통과에 대비해 거부권 행사까지 검토하기도 했다. 결국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은 정기국회에서도, 12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올해 1월 임시국회에서도 끝내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난 19대 국회 (2012~2016년) 때와 비교하면 큰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노란봉투법은 19대 국회에서 법안심사를 한 차례 거친 것 외에는 별다른 진전 없이 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법안심사소위가 세 번이나 개최되는 등 많은 이들이 법안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과적으로, 1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한 노란봉투법은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그나마 열린 1월 임시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였고, 2월 임시국회에서도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 법안 처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선 지난해 말 한 달 가까이 단식 투쟁을 진행하는 등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을 위해 꺼낼 수 있는 카드를 하나하나 소진하고 있다. 운동본부는 국회 앞 농성장을 유지한 채 지금도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조법 2ㆍ3조 개정 촉구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안은 '왜' 표류하고 있나
 
쟁점 법안으로 떠오를 만큼 큰 관심을 모으고, 국회에서 다수석을 차지한 민주당까지 가세하면서 탄력을 받는 듯했던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은 왜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을까. 여기에 운동본부는 크게 두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먼저, 박래군 운동본부 공동대표는 여당과 정부에 1차 책임을 돌렸다.

박래군 공동대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낡은 노동조합법을 건들지 말라며 국민의힘이 현실을 외면했다"며 "불법파업조장법, 황건적보호법 등과 같은 잘못된 프레임을 씌었다"고 비판했다. 이번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과 관련해 여당만큼이나 정부도 날을 세웠다. 거부권 행사를 언급한 대통령실 외에도 많은 정부 인사들이 노란봉투법에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위헌의 논란 소지가 있다"며 노란봉투법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현재 노조법 2ㆍ3조 개정에 대한 논의가 있고 입법 발의된 상황에서 노조법 3조 개정안인 노란봉투법의 경우엔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이어서 위헌의 논란 소지가 있다"며 "손해배상 원칙 적용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며 자칫 잘못하면 불법파업을 조장하거나 불법행위 면제를 줄 수 있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란봉투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같은 날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특정한 사람과 단체에 있어서는 민사상 불법행위를 했더라도 사인 간의 민사상 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게 (노란봉투법의) 핵심"이라며 "그렇게 할 경우 헌법상의 평등권이라든가 하는 문제가 있다. 헌법상 충돌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추진하더라도 정교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역시 노란봉투법 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김문수 위원장은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란봉투법 관련 질의에 "손해배상소송 자체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노동권과 재산권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와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이어 운동본부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법 개정에 대한 민주당의 의지와 결단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운동본부는 "민주당은 노동조합법 2ㆍ3조에 대해 아직 쟁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 법원 판례, 인권위원회 권고 등 이미 법 개정의 정당성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드러났는데, 도대체 무엇이 쟁점이라는 것인가"라며 "쟁점이 있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기업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월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MBC 라디오에 출연해 노동조합법 2조 개정과 관련해 "사용자 범위에 대해서는 계속 논의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강조한 것과 관련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노조 할 권리를 20년이 넘도록 유예 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성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며 싸웠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법 개정 반대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도 논의 과정에서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위법한 쟁의행위에까지 노동3권 보장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할 경우 재산권 등이 과도하게 침해될 수 있고,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노조의 쟁의행위를 허용하기 위해 사용자 범위를 확대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등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지난 1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을 지연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노조법 2조 개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권위ㆍ법원 판결'로 새 국면 맞을까
 
다만, 최근 변수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안 처리가 필요하다는 공식 의견을 국회에 표명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쟁의행위로 인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 및 가압류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위축시키고,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해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직면하게 하며, 정신적 우울로 인한 자살 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이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ILO 등 국제인권기준에 비춰 우리나라의 경우 쟁의행위가 정당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며 노동조합법 2조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개인사업자 외양을 띠지만 타인의 사업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종사자도 근로자 규정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노동조건이나 노동조합 활동에 관해 실질적ㆍ구체적으로 지배력ㆍ영향력이 있는 자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사용자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인권위 의견에 노동계 주장이 그대로 담겨 있는 셈이다.

나아가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대우조선해양, 현대제철,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하청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연이어 내놓고,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와 교섭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노동조합법 2조 개정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수다. 이에 편승한 노동계에선 "하청노동자와 하청노조의 노동조건 개선 등에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원청에 있음이 확인됐다"며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반대로, 하청 관계에서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 존재 여부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노사관계의 사법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 안 논의에서 국회 밖 농성장으로 밀려난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은 장기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법 개정이 지지부진하더라도 노동자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문제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조합법 2조 개정은 노동계가 20여 년 전부터 요구해 온 사안이기 때문에 목소리는 법 개정 여부와 별개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지난해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과 같은 이슈가 또다시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 이슈를 재소환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골든 타임'으로 볼 수 있는 지난해를 넘겼지만, 법 개정 요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게 운동본부의 입장이다.

박래군 공동대표는 "법 개정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국민들에게 계속 법 개정 필요성을 전달하고 여론이 생기면 법이 개정되고 대통령도 함부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노동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이 진정한 노동개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운동본부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7명(70.2%)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원청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노동조합법 2조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조합법 3조 개정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54.4%로 집계돼 10명 중 5명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1월 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이뤄졌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이 같은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운동본부는 당분간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 여론 만들기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이해관계자들의 손을 떠나 국회의 결단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국회 밖 농성장 요구에 대한 국회의 응답은 요원하다. 해를 넘긴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에 대한 긴급좌담회가 열린 지난 1월 6일,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이은주 정의당 의원뿐이었다. 노동조합법 2ㆍ3조 개정의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 국회의원 5명도 공동주최자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날 좌담회에서 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